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베를린의 칼 마르크스 흉상
▲ 칼 마르크스 베를린의 칼 마르크스 흉상
ⓒ 픽사베이

관련사진보기


나이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지만, 중년의 징후를 확인하는 단락에선 약간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40살이 될 때 조금 그랬고, 50살이 될 때 조금 더 그랬다. 나이 드는 게 서러워서가 아니었다. 40ㆍ50이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니다. 그런 나이에 상응하는 나잇값을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불편함 같은 것 때문이었지 싶다. 돌이켜보면 30살이 될 때는 어쩐지 서러웠다. 나이를 제목에 넣은 노래 중에 '서른 즈음에'가 가장 유명한 데는 음악적인 측면 말고도 다른 많은 이유가 있을 터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인 지금은 나잇값에 살짝 신경 쓰지만 크게 개의하지는 않는다. 어느 광고 카피처럼 "입맛이 없어도 잡숫는 나이"보다는 삶 자체의 값어치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기억하여 그의 용어를 차용해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는 교환가치와 가치의 괴리가 초래한 질곡에서 여적 허덕이고 있고,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인식 또한 동일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므로 나잇값보다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200년 전에 태어난 마르크스의 가르침 중에 하나이겠다.

개들은 나잇값을 모른다. 나의 두 마리 개 중에서 식탐이 강한 걸리버는 평소엔 새침하게 지내다가 먹을 것 앞에선 작은 개처럼 펄쩍펄쩍 뛰어오른다. 나와 함께 산 이래 한 번도 변하지 않은 행동이다.

그러나 나잇값을 모르는 그 녀석도 나이는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며칠 전 개 펜션에서 멀쩡히 걷다가 갑자기 옆으로 툭 쓰러져 개 엄마를 놀래켰다고 한다. 다행히 곧 의식이 돌아와 특별한 후속 증상 없이 예전의 그 개로 돌아와 "개처럼" 잘 지내고 있다.

걸리버는 2011년생이니 사람으로 치면 거의 내 나이이다. 내가 유전적인 연유로 사소한 성인병의 징후에 대면하듯, 걸리버 또한 막 그 대면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삶, 나잇값, 그리고 죽음이 아직 막연한 반면 언제부터인가 나의 개들의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벌써 떠나보낸 과거의 개가 있지만, 그땐 내가 젊어서 그랬는지 그 죽음이 그다지 심각했던 것 같지 않다. 지금은 그때보다 조금 더 든 나이 때문인지 나의 개들의 죽음의 생각만으로 조금 더 심각한 기분이 된다.

연애에 대해서 상상해도 그럴 것 같다. 김광석 노래 가사를 인용하여,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니고,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 그 여자 그 사랑은, 혹은 그 여자들 그 사랑들은, 내 젊음 때문이었는지 잘 떠나보냈고 잘 떠나왔다. 지금에서 상상하는 사랑은, 여자는, 나이 때문이 아니라 삶 때문에, 잘 떠나보내지도 잘 떠나오지도 못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이제 사랑은 상상할 일이 아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팔순과 구순의 중간 지점을 통과 중인 나의 어머니가 있다. 꼬부랑 할머니는 어린이날인 오늘 막내아들에게 전화를 거셨다. 노모는 5월 5일이 마르크스 생일인 걸 모르고, 올해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인 걸 모른다. 나의 개들과 노모 중에 어느 쪽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아마도 대체로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지 않을까.

내가 노모를 먼저 보내드리고, 나의 개들을 보내고도 더 오래 산다고 하여도, 마르크스 탄생 300주년을 살아서 보는 일은 없을 것이고, 벼르빡에 똥칠할 때까지 악착같이 살면 아마 마르크스 탄생 250주년을 볼 수 있겠다.

그때 나는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청년들과 소소한 축하 파티를 연 사실을 기억할까. 그때 나의 개, 개들, 어머니를 기억하게 될까. 내가 사랑한 것들과 사랑한 사람들을 기억할까. 내가 갈등하고 투쟁한 것들과 그 사람들을 기억할까. 부질없는 상상을 하는 사이 나의 고등학생 어린이는 학원에서 수학문제를 풀며 어린이날을 보내고 있다. 나의 어린이 또한 오늘이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인 걸 모른다.   

"그것은 희미하게 박동하고 있는 것 같아…… 말의 바깥에서…… 언제나처럼 …… 아직 살아 있는 어떤 것의 작은 끄트머리들…… 내가 원하는 건, 그것이 사라지기 전에…… 나를 내버려둬……" (나탈리 사로트의 <어린시절> 中)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태그:#개와 함께 사유하는 산책, #안치용, #마르크스 ,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김광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학, 영화, 미술, 춤 등 예술을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영화평론가협회/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