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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도 젠트리피케이션] ① 대구 김광석길 예술가도 밀려났다

송고시간2017-07-2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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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10만원 점포가 2년 만에 3배 올라 더 있을 수 없었다"

대구 도심 약령시·북성로도 임대료 치솟자 영세상인 밀려나

[※ 편집자 주 = 도심 낙후지역 개발로 임대료가 점차 오르면서 원주민이나 소상공인이 내쫓기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지방 도시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대구에서도 이런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났고 앞으로 심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김광석 길'도 예외가 아닙니다. 대구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 실태를 살펴보고 이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를 짚어보는 기획물 2꼭지를 제작, 일괄 송고합니다.]

(대구=연합뉴스) 한무선 기자 = '영원한 가객' 김광석(1964~1996)을 테마로 꾸민 대구의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김광석 길)'은 지난해에만 100만여 명이 다녀갈 정도로 늘 관광객들로 붐빈다.

이 길은 김광석의 고향인 대구시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부근에 벽화를 중심으로 꾸민 350m 테마 로드다.

관광객 몰리는 대구 김광석 길
관광객 몰리는 대구 김광석 길

대구 중구는 2010년부터 10억여원을 들여 이곳에 벽화 외에도 야외 공연장, 골목방송 스튜디오, 김광석 노래가 흘러나오도록 꾸민 음향시설 등을 조성해놨다.

김광석을 추억할 수 있는 소재가 있어 시민이나 관광객이 즐겨 찾는 거리지만 실은 주변 상가가 가장 활황이었다.

김광석 길 쪽으로도 이미 프랜차이즈 카페 등이 들어서 있으나 인접한 방천시장을 중심으로 식당, 주점, 카페 등이 가득해 저녁에는 불야성을 이룬다.

그런데 이 지역은 도심 낙후지역 개발로 임대료가 오르며 원주민이나 소상공인이 내쫓기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얘기할 때 대구에서 첫손에 꼽히는 곳이다.

김광석 길에는 2009년만 해도 그저 방천둑 옹벽만 있었다. 당시 방천시장은 한마디로 죽어가던 전통시장이었다.

방천시장을 살리기 위해 중구청과 시장 상인, 예술가가 공동 프로젝트 '별의별 시장' 사업을 펼치면서 일대는 변환점을 맞았다.

공공미술과 전통시장의 만남이라는 콘셉트로 이때부터 시장의 빈 점포에 예술가들이 입주해 작업실이나 전시장으로 활용했다.

전통시장에서 예술활동을 하는 신기한 광경에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여들었고 쇠락한 시장이 서서히 살아났다.

예술가들은 시장 가까이에 볼품없이 있던 옹벽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다 김광석을 테마로 벽화를 그려 넣었고 이를 계기로 김광석 길이 생겨난 것이다.

그 뒤 김광석 길이 점차 알려져 명소가 되자 점차 주변 땅값과 임대료가 상승했고 전통시장을 살려낸 예술가들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났다.

당시 활동하던 예술가로 빈 점포에 입주했던 정훈교 시인보호구역 대표는 "2012년 말 월세 10만원에 입주해 2년 동안 아지트를 꾸며 시 공부 모임을 하거나 시 낭송을 했다"며 "2년 뒤 임대료가 3배가 올라 더는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음식점이나 카페, 순수 예술보다는 상업 예술을 위한 공간 등으로 채워졌다고 덧붙였다.

방천시장 내 영세상인들 역시 오래 버티지 못했다.

방천시장 점포 60여곳 가운데 영세상인이 운영하던 절반 정도가 지금은 새 주인을 맞았다.

중구에 따르면 2010∼2011년 김광석 길에 있던 업소라곤 방앗간 1곳과 갤러리를 겸한 카페 4∼5곳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카페와 식당 17곳을 비롯해 소품 가게, 오락실, 편의점까지 모두 27개 업소가 성업 중이다.

중구가 지난해 조사한 결과 방천시장 안 점포를 뺀 주변 업소 90여곳 가운데 60여곳이 식당, 카페 등 서비스업을 한다.

대구 약전골목
대구 약전골목

[대구 중구 제공=연합뉴스]

대구 지역 젠트리피케이션은 김광석 길뿐 아니라 중구 현대백화점 대구점 뒤 약령시 한방 특구인 약전골목도 훑고 지나갔다.

2011년 현대백화점이 문을 열자 인근 약전골목에는 음식점, 카페, 미용실 등이 들어서 임대료가 3∼4배 뛰었다.

그뿐만 아니라 약전골목의 업태 변화도 불러왔다. 현대백화점 입점 전인 2009년에 있던 약업사, 한약방 등 관련 업소 210곳이 지난해 12월 기준 177곳으로 줄었다.

최근에는 중구 북성로 일대에도 젠트리피케이션 우려가 나온다.

낡고 오랜 공구 골목이던 지역이 구청 주도의 재생사업으로 공구박물관과 문화공간 등이 들어선 뒤 임대료가 급등했다.

대구 북성로 공구박물관
대구 북성로 공구박물관

[대구 중구 제공=연합뉴스]

정 대표는 "도심재생사업 초기부터 젠트리피케이션에 우려를 나타냈지만 구청에서는 귀담아듣지 않았다"며 "젠트리피케이션은 오랜 소극장이 밀집해 있던 대명문화거리 같은 곳에서도 앞으로 벌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시민 이성민(39·회사원)씨는 "낙후지역에 콘텐츠를 불어넣어 새로 개발했다고는 하지만 그 자리에 대체로 프랜차이즈 카페나 식당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니 몰개성이 획일화하는 것은 느낌을 준다"며 "개발 전후와 비교해 어느 쪽이 나은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ms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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