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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광석 "기타와 40년…마음 닿는 대로 연주하죠"

전지현 기자
입력 : 
2017-08-30 17: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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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부터 10만곡 녹음 반주…기타와 비파 접목한 `비타` 개발
창작곡으로만 1~4집 음반 제작
바람의 기타리스트 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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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김광석(62)은 매니저가 없다. 연주료도 말하지 않는다. 마음 맞는 사람이 있고, 그의 연주를 원하면 어디든 간다. 바람 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그는 "개런티를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들 챙겨준다"며 "내 생각보다 많이 줄 때도 많은데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며 씩 웃었다.

인생을 바친 그의 연주를 들으면 돈이 아깝지 않다. 심오한 선율이 영혼을 울린다. 무대에 올라도 말없이 기타에만 집중한다. 그 엄숙함은 순식간에 관객을 몰입시킨다. "원래 말을 잘 안 해요. 기타 치러 나왔으면 기타에 모든 걸 쏟아야지, 말을 하면 산만해지고 예능 프로그램처럼 돼요. 언젠가 제주도에서 2시간 동안 아무 말도 안 하고 연주했는데 기립박수를 받았어요. 대부분 말을 안 한 날에 관객들 반응이 좋았죠."

한국에서 유명해지려면 음악가도 떠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나한테는 (유명해지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유명해지려는 노력을 일절 안 해요. 누구나 (나를) 알아보면 자신을 지키기 힘들어요. 제가 유명해지면 뭐하겠어요. 불필요한 짐이 되고 나를 이상하게 바꿀 것 같아요."

방송국에서 출연 요청이 와도 거절하고 있다. 다만 그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소리꾼 장사익, 가수 주현미 부탁으로 TV에서 노래 반주를 한 적은 있다. "한 방송국 임원이 '김광석 씨를 가만 안 두겠다'며 저를 띄우려 했지만 '됐거든요. 전 지금 너무 행복해요'라고 거절했어요. 방송에 나가 시시덕거리는 게 체질에 안 맞아요."

그래도 음악계에서는 '기타의 전설'로 통한다. 중학교 1학년 때 기타를 딱 5일 배운 후 혼자 음률을 득음했다. 1977년부터 지금까지 세션(레코딩 연주 그룹)으로 참여한 음반 수록곡이 10만곡 넘는다. 조용필, 전인권, 심수봉, 이문세 등 1000여 명의 음반 녹음에 참여했다. 자연스레 록, 트로트,국악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게 됐다. 그는 국내 음반사들의 녹음을 도맡아 하던 톱 세션 멤버였다.

"스물세 살에 처음 녹음실에 갔는데, 우리나라 최고만 앉아 있었어요. 거기(세션)에 들어가면 대우가 달라져 연주자들의 꿈이었죠. 하루에 2장씩 녹음했고 일요일도 연주했어요. 현충일만 쉬었는데 그날 약혼식을 올렸죠. 엄청난 실전 연주가 수업이었죠."

반주만 한 게 아니라 자작곡으로 4집 음반까지 냈다. 1995년 1집 앨범 '더 컨페션'부터 CD 4장에 43곡을 담은 2집 '더 스트리트', 3집 '은하수', 4집 '구름 위에서 놀다'까지 모두 창작곡으로 채웠다. 특히 4집 앨범은 '비타'로 연주했다. 기타와 고대 악기 비파의 장점을 접목해 직접 개발한 악기다. 모양은 비파인데 거문고와 가야금 현 6개로 이뤄졌다. "예술의 궁극은 창작이에요. 누구를 흉내내서 아무리 잘 해봐야 의미가 없어요. 한국 기타리스트가 서양 음악을 기능적으로 잘 칠 수 있지만 혼을 담을 수 없죠. 이렇게 해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해 비타를 만들었어요.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싹 버리고 이 세상에서 없는 소리, 음률, 주법을 만들었죠."

오직 기타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그는 술을 안 마신다. 몽롱하게 있을 시간이 없다고 한다. 누구를 가르치지도 않는다. 대학 강의까지 거절했다.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타가 싫증날 때가 없었냐고 묻자 "그럴 때는 새 기타를 사서 관심을 돌린다"고 답했다. 다양한 기타 60여 대가 그의 집 방 하나를 독차지하고 있다. 그는 "1970년대 좋은 기타와 아파트 가격이 비슷했다"며 "악기만 안 샀으면 벤츠를 타고 다녔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타밖에 모르는 그의 문자 메시지는 항상 이 문장으로 끝난다. '기타 공부하는 학생 김광석.'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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