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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공범자들`,`김광석`,`저수지게임`의 무비 저널리즘 `스크린으로 간 저널리스트들`

박찬은 기자
입력 : 
2017-09-15 16:39:59
수정 : 
2017-09-22 11: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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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주진우 기자가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추적하는 영화 <저수지게임>은 개봉 6일 만에 누적 관객수 6만 명으로 박스오피스 6위를, 출신 최승호 감독의 공영 방송 침탈 기록 <공범자들> 역시 누적 관객수 24만 명을 넘기며 톱10(9월12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이름을 함께 올렸다. 그런가 하면 MBC 해직기자 이상호 감독이 김광석 죽음의 미스터리를 다룬 <김광석>은 변사자의 공소시효 폐지를 다룬 ‘김광석법’ 국회 입법 발의를 준비 중이다. 때맞춰 MB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공개된 9월 현재, 공중파 시사 교양이 사라진 자리를 저널리스트의 탐사 다큐가 대신하고 있다. ▶“MBC 다 망쳐놓고 밤에 잠이 옵니까?”

24만명 돌파한 <공범자들> 최승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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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노트북을 든 한 관객이 흐느끼고 있다. 기자라면 이 영화가 무겁다. 공영방송 10년의 잔혹사가 100분 안에 꾹꾹 눌러 담겨 있는 영화를 본 날은 MBC, KBS, YTN 3사가 첫 동시 파업을 시작한 날이었다. 첫 장면은 정연주 사장의 퇴임을 막으려는 KBS 기자들이 사복 경찰에 의해 들려 나가는 신이다. 낙하산 사장 취임 뒤 <시사투나잇><미디어포커스>가 차례로 폐지되고, 탐사보도팀은 스포츠 중계팀으로 발령이 난다. 당시 망가진 언론 환경을 가장 명징하게 보여준 것은 지방 MBC의 보고를 무시한 전국부장이 ‘전원구조’ 오보를 내고, ‘유가족 깡패’ ‘교통사고’ 발언으로 상처를 헤집었던 세월호 사건이었다. 언론사 중 최장기간인 170일간 이어진 MBC 파업의 결과는 최승호 PD를 비롯한 6명의 언론인 해고와, 100여 명 정직과 징계였다. 영화 <공범자들>은 KBS 김인규, MBC 김재철, YTN 배석규 사장이 취임하는 ‘점령’ 챕터를 지나, 노조가 파업에 나선 ‘반격’, 그리고 그 싸움에서 진 뒤, 촛불 현장에서 쫓겨나는 현실을 참담하게 기록한 ‘기레기’ 챕터로 나아간다. 감독은 방송인들의 저항을 해고·징계·고소로 막은 방송사 사장들·체포·기소로 도운 검찰 모두 ‘공범자들’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강하다. 깊은 성찰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TV를 방송 장악자들에게 뺏긴 지금 영화는 우리가 가진 영상저널리즘의 가장 큰 무기다. 영화 속에서는 공범자들의 비정상적인 말과 행동 때문에 관객들이 웃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사람에게 방송을 맡겼다. 영화를 보며 웃고 나면 다시 기가 막히게 되는 이유다.”(최승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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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하게 다가가서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냉철하게 질문하는 <공범자들> 최승호 감독에게서 관객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액션 저널리즘’으로 명명되는 최승호 감독 특유의 역동적인 취재 방식, 마치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속도감 있는 촬영, 사건의 요지를 전하는 긴박감 넘치는 편집은 상업 영화의 공식을 따른다. 언론을 망친 주범과 그들의 하수인들을 끝까지 찾아가 이들 모두를 카메라 앞에 세우는 최승호 PD를 피해 내빼는 <공범자들> 속 지질한 부역자들의 모습은 웬만한 예능 코미디를 뺨친다. 영화 속에서 김민식 PD(<뉴 논스톱><내조의 여왕>)는 “‘너 아니어도 돼’ 라는 식의 사측 태도는 ‘내가 아니면 안돼’라고 무장하고 늘 녹화 현장에 오는 PD들에겐 큰 상처”라며 울먹인다. 아이스링크 관리를 하고 있는 아나운서와 PD 등 망가져가는 공영방송 안에서 격렬한 전쟁을 치러온 이들은 “KBS, MBC는 다 망했어”라며 물병을 집어 던지는 대중들에게 영화 속에서 다시 한 번 말한다. ‘자신들은 계속 그 자리에서 싸워왔으니 잊지 말아 달라고, 다시 MBC가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되게 해달라’고. 파업 과정에서 암을 얻어, 이전의 풍채가 크고 건강했던 5년 전 모습은 상상조차 안 될 정도로 병색이 완연해진 이용마 기자의 마지막 말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10년 동안 청춘, 인생은 다 없어져버렸죠. 하지만 이렇게 싸워왔다라는 것, 기자들로서 그걸 기록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어요.” 만 명이면 흥행’이라는 독립영화 시장에서, 상영가처분 신청 등 각종 외압과 적은 개봉관, 퐁당퐁당 상영에도 불구하고 <저수지게임>(6만 명)과 <김광석>(4만 명), <공범자들>(24만 명, 영진위 9월12일 기준)의 기록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KBS와 MBC의 파업, SBS 사장의 퇴임, MB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폭로 등의 정국과 맞물려 저널리즘 다큐 영화들이 유의미한 흥행을 기록 중이다. 파업의 마중물이 된 <공범자들>, 최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MB 비자금 농협 210억원에 대한 수사 촉구 발언을 이끌어낸 <저수지게임>, 변사자 공소시효 폐지 입법을 청원 중인 <김광석>. ‘교훈’ ‘진지함’의 다큐 영화 특유의 무게를 벗은 채, ‘재미’와 ‘풍자’, ‘팩트’를 장착한 저널리즘 다큐가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는 평가다.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은 ‘그분’을 찾아서”

<저수지게임> 주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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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1위를 가장 많이 기록한 기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관련 문서를 특종 보도했지만 메이저 언론에서는 단 한 줄도 안 다루는 기자, <시사인> 주진우. 타이틀부터 다이내믹한 편집, 감각적인 음악으로 시작하는 영화 <저수지게임>은 뉴욕, 토론토, 케이만 군도 등 해외를 넘나들며 ‘가카’의 비자금 저수지를 찾는 주진우 기자의 22개월간의 비자금 추적 스릴러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제작하고, MB를 10년간 쫓으며 100여 차례의 고소와 고발을 당한 ‘소송 변태’ 주진우 기자가 출연한 <저수지게임>은 ‘수감번호 503’의 서슬이 퍼랬던 3년 전, 앞으로 사라질 지도 모를 사건 단서들을 남겨 두기 위해 기획됐다. 주 기자는 캐나다의 은행과 케이만 군도를 넘나들며 전직 대통령의 돈을 쫓았고, <더 플랜>최진성 감독은 그런 주 기자를 쫓았다. “짧은 음성파일 하나만 들고 레이먼드 챈들러의 하드보일드 소설에 나오는 탐정처럼 추리를 해나가더라고요.”(최진성 감독) 영화는 자원외교, 4대강, 방산비리 등 ‘그분’을 둘러싼 많은 비리 트랙 중에 가장 플롯이 쉽고 탄탄했던 ‘노스욕 캐나다 대출 사기 사건’을 주요 소재로 삼아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줄기를 고구마 캐듯 캐낸다. "김(어준) 총수와 10년 동안 통화를 해본 적이 없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정부 요직엔 이전 권력이 있고, 우린 여전히 대포폰과 텔레그램을 애용한다. 해외로 취재 갈 때는 3군데를 한꺼번에 끊고 막판에 탄다. 그런데도 중요 증인은 꼭 사라진다. 기자가 카메라 하나 들고 이 정도 쫓았는데, 검찰이 왜 못하겠나. 권력자들이 이제는 아무도 안 쫓는 줄 알았을 때, 여전히 1명의 기자는 자기들을 추적하고 있다는 걸 느꼈으면 한다.”(주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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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게임>의 저수지는 ‘돈을 숨겨둔 곳’이자, 관련된 인물들이 사체로 발견되는 ‘죽음’의 장소로, 돌 하나로 진실의 둑이 무너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BBK 주가조작사건, MB 내곡동 사저 특종을 터뜨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을 찾아낸 악마기자, 주진우. “그분의 직접 소송을 기다린다”는 주 기자는 “정권 교체 이후에도 MB 관련 자료 제공 의지를 밝혔지만, 정치부, 사회부도 아닌 원예잡지 기자 1명에게서만 연락이 오는 걸 보고, ‘그분’의 살아있는 권력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수사권 없는 민간인 몇이 시작한, 한계부터 명확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실패담으로 규정하고 시작한 <저수지게임>은 ‘나쁜 짓 하면 때려줘야 해’라는 단순한 논리로 비자금을 지난하게 추격하는 기자라는 한 초현실적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현재의 언론 환경에선 많이 사라진, 영화에서라도 보고 싶은 그런 캐릭터 말이다.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은 ‘그랜드 야바위’를 한 그랜드 마스터의 이야기”라고 <저수지게임>을 소개하는 김어준 제작자는 “우리가 할 일은 여기까지. 이후에는 국회, 수사기관이 바통을 넘겨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그의 바람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언론에는 공소시효가 없잖아요” 이상호 감독

<김광석> 변사자 공소시효 폐지 입법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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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이런 분들을 봬요. 노래는 나의 인생이고 삶을 택할 것이냐 노래를 택할 것이냐 그러면 ‘가수입네 하면서 노래를 택할 것이다’ 하는데 저는 절대로 안 그럴 거에요. 제 생활을 택하죠.”(김광석 사망 1년 전(1995) 인터뷰 中) 영화 <김광석>은 이상호 감독의 말에 따르면 ‘음악 다큐 영화’다. 올해 제천국제영화제에도 초대됐다. 그러나, 청춘의 반토막을 그의 노래와 함께 보낸 사람들이 그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지니고 있는 향수가 20년의 세월을 넘어 덮쳐옴과 동시에, 영화 속 충격적인 팩트에 직면하게 되면서 장르는 스릴러로 반전된다. 그리하여 영화가 끝날 때 즈음엔 익히 알려진 ‘자살’이 김광석 죽음의 원인이 아닐 수 있음을 서늘하게 전달하며 영화는 추리물, 탐사 다큐로 탈바꿈한다. 기자라면 누구나 제기할 법한 당시 사건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에서 시작한 영화는 기자 이상호의 20년간의 취재기록이자, 가객 김광석의 일상을 느끼고 볼 수 있는 ‘뮤직 르포르타주’다. 가족과 지인들의 증언, 법의학자와 프로파일러 등 전문가들의 소견, 당사자들의 인터뷰가 김광석의 노래와 함께 콜라주되어 있기 때문이다. "후배들 군대 보낼 때는 ‘이등병의 편지’를, 서른 살이 되던 날 밤엔 ‘서른 즈음에’를, 나이가 들어서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제 얘기 같아 눈물이 난다. 김광석이라는 훌륭한 가수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재조명하고 싶었다. 취재 중 좌절할 때마다 김광석씨 노래가 자꾸 나왔다. 전혀 뜻밖의 시간과 장소에서 마치 사이렌처럼. ‘인권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변사자에 대한 조사 수준이 김광석씨가 돌아가신 20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크게 나아진 게 없는데, 영화를 통해 낙후된 공권력에 태도와 제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보고 싶었다.”(이상호 감독) 영화 <김광석>은 개봉 첫 주 1만4084명의 관객을 모아 다양성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하고, 개봉 6일차엔 누적 관객수 3만 명을 돌파해 감독의 전작 <다이빙벨>(최종 관객수 5만288명)의 기록을 3배 앞당겼다. 김광석 변사사건 수사에 대해 의문을 던진 첫 번째 영화 <김광석>은 한해 3만 명에 이르는 수많은 변사 사건에 대해서도 커다란 의문을 던진다. 현재 개봉관은 많이 줄어든 상태이나, 영화가 입소문을 끌면서 국회에서는 ‘김광석법’ 입법 발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김광석법은 지난 2000년 8월 이전의 변사사건 중 살해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새로운 단서가 발견되고, 용의자가 생존해 있는 경우에 공소시효와 관계없이 재수사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골자다. 김광석 사망 당시 초짜 기자로 소위 물을 먹은 뒤, 장례식장에서부터 현장 취재를 시작한 이래 20여 년에 걸쳐 그의 죽음을 끈질기게 추적해온 이상호 감독. 당시 사건 현장 사진과 인터뷰 영상,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김광석의 일기장 등도 처음 공개된다. “언론이 질문을 못하면 나라가 망해요.” 4년 뒤, 정말 나라가 망했다.’ 최승호 감독의 개그력이 입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을 받은 <공범자들>의 한 장면이다. 카메라를 피해 계단으로 숨고, 감독과 쫓고 쫓기고. 자료나 녹취, 영상을 무기로, 예능보다 더 코미디 같은 ‘웃픈’ 현실을 저널리스트들이 스크린에 담았다. 주연 배우들의 소송을 손꼽아 기다리는 감독의 마음이란 어떤 걸까. 공중파 방송이나 신문에서는 다뤄주지 않았던, 그래서 팟캐스트 등을 통해 듣고 봤던 화면들을 멀티플렉스의 커다란 화면으로 만나는 기분은 이질적이다. 국정 농단으로 인한 촛불 집회를 겪은 대중은 정권 교체 이후 ‘망가진 공중파 시사’ 대신 ‘팟캐스트’와 ‘탐사 다큐’로 시선을 옮겼다. 상업영화의 외피를 입은 저널리즘 다큐는 ‘진지함’ ‘노잼’의 오명을 벗고, ‘풍자’와 속도감, 저돌적 취재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사회적 반향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글 박찬은 기자 사진 ㈜엣나인필름, ㈜BM컬쳐스, ㈜스마일이엔티]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97호 (17.09.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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